발트해 연안에 있는 공화국인 리튜아니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1940년에는 소련, 1941년부터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1944년 다시 소련군에 점령되면서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이 되었다가,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하였다.
발트3국 중 발전이 뒤졌으며,농업의 비중이 크다. 공업은 식품과 경공업이 주요부문이고, 낙농과 양돈이 전문화되었으며, 근년에 기계, 화학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국내를 횡단하는 철도 및 자동차 도로는 빌뉴스에서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민스크, 리가에 이르는 것과 카우나스에서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것이 있다. 수상운송의 중심은 네무나스강 중류의 카우나스이고, 항만으로는 클라이페다가 있다.

리투아니아는 평지가 주를 이루는 국가로서 가장 높은 지역인 주아자핀 지역이 불과 294m이다. 국가의 면적은 아일랜드 정도의 크기이며, 한반도의 1/4에 해당된다. 발틱 국가중 세 번째로 큰 나라에 속하기도 하는 이곳에는 다섯 개의 국립공원과 수많은 자연 보호지역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Kursiu Nerija 국립 공원은 높은 모래언덕과 같은 특이한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소나무숲, 해변 개펄 등으로 가득차 있다.

리튜아니아의 수도인 빌리우스(Vilnius)에는 약 60만명의 인구가 있으며,이곳의 국제적인 풍모인 리투아니아의 유태인 이주자들 때문에 가능했다. 중부 유럽 등으로 부터의 영향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며, 16세기에 Vilnius는 동부 유럽의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 이자 17세기에는 폴란드 황금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19세기에는 중요한 유대도시가 되었다. Vilnius는 발틱해로부터 250Km떨어진 Neris강변,리투아니아 남동쪽, 벨라루스 접경지대에 위치하고,시의 중심부는 강의 서부지역이며 대성당 광장이 중심이다.

항공
아시아에서 가는 직항편은 없다. 한국에서 가기 위해서는 런던 히드로 공항이나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거쳐서 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스케쥴에 속한다. 공항은 시 중심부로부터 5km 떨어진 Kirtimai의 교외에 있으며, 카우나스 공항은 Old Town 북쪽 10km 지점에 있다.



면적 : 6만 5300㎢

수도 : 빌리우스(Vilnius)

인구 : 약 369만명

정치형태 : 의원내각제

종교 : 국민 대부분이 로마 가톨릭 신자이며, 소수의 루터교와 러시아 정교 신자도 있다.

주요민족 : 리투아니아인 80%, 러시아인 9%, 폴란드인 7%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수의 우크라이나 인, 벨라루시인, 유태인, 타타르인이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리투아니아 인으로 민족분규는 없는 편이다.

주요언어 : 리투아니아어가 공용어로 사용된다.

기후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혼합되어 있으며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고 여름은 온난한 온대성 기후이나 연중 안개 낀 일수가 40-110일, 폭풍우가 있는 일수가 15-50일, 눈보라치는 일수가 10-15일로 불안정한 날씨가 많다. 1월 평균기온은 -4.9 ℃, 7월 평균기온은 17.0 ℃이다.
리투아니아의 5월에서 9월까지는 여행이나 관광을 즐기기에 결코 적합한 시기는 아니다. 대다수의 여행자들은 7월에서 8월 중에 오기 때문에 이 시기에 저렴한 호텔과 호스텔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겨울인 11월에서 3월은 거의 매일 눈이 흩날리며, 춥고 햇빛을 구경하기가 좀처럼 드물다.

지리
북동부 유럽의 발트해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라트비아 공화국 (Latvia)과 453㎞, 남동쪽으로 벨라루시 공화국(Byelorussia)과 502㎞, 남서쪽으로 폴란드(Poland)와 91㎞, 서쪽으로 러시아연방의 칼리닌그라드 (Kaliningrad)지방과 227㎞ 국경을 접하고 있다. 덴마크, 스코틀랜드 등의 국가와 같은 위도상에 있으며 발트해 국가중 가장 큰 리투아니아 국토의 총면적은 65,200㎢로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보다 약간 크며 한반도의 1/4 크기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동유럽 평원의 일부에 속하는 평탄한 저지대를 형성한다. 발틱해안을 따라 15-20㎞ 폭의 Paj rio 저지대가 있는데 이는 빙하시대에 생긴 빙퇴석(氷堆石)이 저지대 평야를 이룬 것이며 저지대 가장자리 해안평지 동쪽에 고대 빙하시대의 계곡에서 만들어진 모래와 자갈로 뒤덮힌 emai i 고지대가 있다.
고지대의 최고봉은 Medvgalis로 해발 234m이다. 이 고지대는 남쪽의 Baltic 고지대와 중부지방을 지나 동부의 저지대로 이 어진다. 국토의 최고봉은 동부지방에 있는 해발 294m의 Juzapine Hill과 해 발 293m의 Kruopin HiIl이다. 하천과 호수가 복잡하게 연결이 되어 수계를 형성하고 있다. 남쪽에서 북 쪽의 발틱해로 흐르는 Nemunas강을 비롯하여 발틱해로 구불구불 흘러드는 강이 여러개 있으며 호수는 Baltic 고지대의 북쪽지방에 밀집되어 있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Laba diena.
의 미 : 안녕하세요.

현지어 : Apgailestauju.
의 미 : 죄송합니다.

현지어 : Viso gero.
의 미 : 안녕히 계세요.

현지어 : Aciu.
의 미 : 감사합니다.

현지어 : Kiek kainuoja?
의 미 : 얼마입니까?


역사
근대 리투아니아 인들의 시조는 발트족으로 BC 2000년경 이 민족이 남쪽으로부터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왔다. 12세기경에는 리투아니아 지역에 거주했던 서쪽의 Samogitians과 동쪽의 Aukstaitiai 부족들과 리투아니아의 남서쪽과 폴란드의 접경지역에 거주했던 Yotvingians과 발틱인들은 후에 리투아니아인과 폴란드인에 동화되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 후 13세기 중반에는 Mindaugas는 짧은 시간 동안 리투아니아의 여러 부족들을 카톨릭 신앙아래에 통합한다. 16세기말부터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통치아래 들어가게 되었으며 당시의 세력을 확장하던 폴란드와 연합하여 러시아에 대항하였지만 독립은 이루지 못했다.

세계 1차대전 중에 리투아니아는 독일에게 점령당하였지만 독일 패전 후 1918년 소련과 폴란드의 세력다툼 사이에서 독립을 선언 공화정부를 수립한다. 하지만 1919년에 폴란드 군대는 Vilnius를 점령하지만 러시아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승인하는 평화 협정에 조인하였다. 이후 2차 대전 중에 독일과 소련의 밀약으로 소련에 합병되었으며 스탈린에 의해 사회주의 국가로 소비에트 연방이 되었다. 2차대전중 독일과 소련의 점령을 번갈아 진행되었으며 종전 후 실질적인 세력은 공산당에게 넘어갔다.

1960년대 부터 지식인의 정치, 종교적 자유에 대한 열망과 시위가 계속되었으며 소련의 고르바초프 집권 당시엔 민족주의의 힘입어 독립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마침내 1989년 소련의 인민의회에서 독립이 인정, 소련 공산당에서 분리되었다. 의회는 리투아니아를 독립공화국으로 선포하였으며, 독립 선언서에 100일 간의 모라토리엄을 선포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1991년 8월 19일 모스코바에서 고르바초프에 대항한 쿠테타가 일어나자 모든 것이 변하였다. 서방세계는 드디어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승인하였고,소련도 1991년 9월 6일에 이를 승인하였다. 1991년 9월 17일 리투아니아는 유엔에 가입하였다.


전압 및 주파수
220V,50Hz

치안
관광 호텔이나 레스토랑 주변에서 주로 밤에 소매치기를 포함한 거리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 주인이 없을 때 자전거와 자동차 절도도 흔한 편이며 열차, 기차역등 사람이 많은 곳과 호텔 객실에서는 강도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통화
리타스(litas)를 사용하며 4 litas가 미화 1달러에 해당한다.

시차 : -8시간




▶ 빌리우스

영어로는 빌리우스(Vilnius), 폴란드어로는 빌노(Wilno)라고 하는 이 도시의 옛 이름은 빌나(Vilna)다. 바르샤바 북동쪽 380 km, 민스크 북서쪽 180 km 지점에 있으며, 네무나 강의 지류 빌리야강 양안(兩岸)에 위치한다.
1323년 이래로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리우스(Vilnius)는 역사적으로 국제적인 도시이다. 19세기 초에 빌니우스는 이디시(Yiddish)문학과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인구의 절반이 유태인이었다. 네리스(Neris)강이 빌니우스를 휘감고 흐 르며 구시가의 대부분은 강 왼편에 있다. 빌리우스에서 서쪽으로 128㎞ 되는 곳에 위치한 리투아니아의 오래된 도시인 카우나스(Kaunas)가 있다. 빌리우스보다 규모는 작지만 중세의 차분함이 느껴지는 도시이다.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이 도시는 국제적인 풍모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리투아니아의 유태인이주자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부 유럽 등으로 부터의 영향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빌리우스는 동부 유럽의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였다. 17세기에는 폴란드 황금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19세기에는 중요한 유대도시가 되었다. 그 당시 독일, 폴란드 러시아는 모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2차 대전 이후 폴란드와 유대인들은 거의 사라지고 빌리우스는 리투아니아 독립 운동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시의 중심부는 강의 서부지역이며, 대성당광장이 중심이다. 광장 북쪽에 대성당이 있고,그 뒤에는 게디미나스(Gediminas) 언덕이 있다. 동유럽에서 가장 큰 Old Town은 대성당 광장으로부터 남쪽으로 뻗어있다. 교회의 뾰족탑은 쭉뻗은 길의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있으며 수많은 숨겨진 정원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이 밖에 빌라우스(Vilnius)대학, 대통령 궁, 전망대 유대인들의 옛마을과 거주지역이 있다. '세 개의 십자가 언덕(Three Crosses Hill)'이 옛도시를 내려다 보며 길 게 펼쳐져 있다. 세 개의 십자가는 17세기 이 지역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한 세 수도사를 기념하기 위해 거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신도시는 구도시에서 서쪽으로 2km떨어진 곳에 있으며,거의 모든 건물이 19세기에 건설되었다. 시청이 여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리투아니아인들의 대량학살 박물관(Museum of the Genocide of the Lithuanian People) 이 또한 여기에 있다. 그 뒤쪽으로 게스타포(Gestapo)와 KGB건물이 들어서 있다. 가이드 들은 모두 여기에 수용되었던 자들이고, 관광객들에게 그들이 고문을 당했던 방들을 보여 준다. 강의 남쪽에는 미국의 록음악의 전설인 Frank Zappa의 상반신 기념 동상이 있다. 구도시 근처에는 많은 숙박시설이 있으며 좋은 식당들이 있다.

교육
빌라우스 대학교는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서 무려 400년이나 되었다. 이 학교는 학교 내에 박물관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훌륭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학교는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등의 건축양식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대학 교회가 박물관이 되어 일반에 개방되고 있다. 조각품과 회화작품도 있고 내부장식이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다. 벽을 따라 작을 칸을 막은 방이 즐비한데 오래된 화폐, 고서, 측량기기, 망원경 등이 전시되어 있다.
리투아니아의 문화 중심지로 1579에 설립된 예수회 학교의 후신인 V. 캅수카스스국립대학교와 1969년 설립된 빌리우스 토목공학대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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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에 있는 십자가 언덕(Crosses' Hill in Lithuania)
















리투아니아에 있는 십자가 언덕(Crosses' Hill in Lithuania)..

우리에게는 낯선 나라 중의 하나인 러시아 옆에 위치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발트해 연안의 세 나라 가운데 하나인 리투아니아의 십자가 언덕이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이 두나라의 국민들의 대다수가 러시아 정교와 복음주의 루터교를 믿는 반면에

리투아니아는 국민들 대다수가 가톨릭 교회를 믿는 이른바 가톨릭 국가이다.

그런 만큼 이 나라에는 가톨릭 유적이나 유물들이 프랑스나 스페인에 못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많다.

그 중에 가장 알려진 것으로는 십자가 언덕을 들수가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발트 3국 사목방문하셨을 때 들렀던 곳이며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종교적인 성지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이 곳에 십자가가 세워졌는지는 정확히는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14세기부터 사람들이 하느님께 소원을 비는 뜻으로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하나씩 둘씩 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그 유래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이 곳이 정작 유명세를 탄 것은 종교를 탄압하던 소련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리투아니아는 독립국가가 아닌 소련의 연방을 이루던 작은 지역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소련의 식민지였는데,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보던 소련당국은 종교를 갖은 악랄한 방법으로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항의로 리투아니아인들은 십자가 언덕에 십자가를 놓기를 계속했다.

그러면 소련군은 낮이면 불도저 및 탱크와 공군기로 이 십자가 언덕을 초토화 시키거나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고

밤이면 리투아니아인들이 다시 세우고 하면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내려 왔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정성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이 나라는 1989년엔가 소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고,

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는 무너졌다. 이 십자가 언덕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는 종교적인 성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그 어떠한 것이 이 곳에 있다.

이 곳은 리투아니아 가톨릭 신자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순례객들이 많이 찾는 성지이기도 하다.

리투아니아 현지에서는 Kryziu Kalnas라고 하고 영어로는 Hill of Crosses라고 한다.


왠지 무서워요...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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