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본의 어느 작은 절 앞, 그 일본인은 그 지방에서 나름대로 유명한 절 앞에서 특유의 친절한 눈빛으로 ‘ZEN’ 스타일의 절이라고 했다. 당시 그가 말하는 ZEN이라는 것은 겨우 옆에 써 있던 한자 ‘선(禪)’을 일본어로 읽은 것이라는 것과, 불교 종파의 하나겠거니 했다. 스쳐가듯 들었던 그 말, ZEN 스타일이 몇 년 후 유행이 될 줄은 몰랐다.
  1. 교토의 대표적 관광지 금각사

교토에서 보는 ZEN
한 동안 유행했던 ZEN 스타일은 불교 종파인 선종 사상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동서양의 문화가 조금씩 녹아 들어있기는 해도 동양적인 요소들이 많이 눈에 띈다. 무언가로 가득 채우기보다는 공간을 중요시하고, 대나무, 실크등의 자연의 질감을 그대로 이용해 전체적으로 은은하고 차분한 색깔을 유지한다. 이런 ZEN 스타일을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일본의 교토다.

일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교토가 일본의 가장 큰 유적도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주처럼. 일본의 유적이라는 것은 이들의 역사와 종교, 천황에 대한 것이 대부분인데 특히 교토를 ZEN 스타일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선(禪) 사상의 절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야트막한 지식으로 몇 천년을 이어온 부처의 가르침을 어떻게 쉽게 표현할까마는 간단히 말하자면 스스로의 참선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이 주 골자라고 할 수 있겠다. 나아가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포함한다.
작은 모래정원에서 우주를 꿈꾸다
일본으로 건너간 선종 사상은 특히 교토에선 절의 정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ZEN 스타일의 정원이라고 하기에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것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아무튼 벽 보고 참선한다는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선종의 정원은 ‘가레산스이’ 라 불리는 꽃 나무는 커녕 풀 한 포기, 이끼 한 점 없는 바짝 마른 정원이다. 가레산스이를 아무런 지식 없이 접한 첫 인상의 십중팔구는 당황스러움이다.

대표적인 선종 사상의 정원을 볼 수 있는 곳은 료안지(龍安寺)의 정원이다. 료안지를 찾는 사람들은 모두 정원을 보러 온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료안지의 가레산스이 정원은 굵은 흰 모래와 크고 작은 돌 15개로 이루어져 있다. 야트막한 담장 아래에 평화로이 앉아 있는 이 정원의 굵은 모래는 잘 빗질되어 있어 마치 잔잔한 물결이 이는 것 같다. 동시에 세월의 이끼가 붙은 돌은 바다에 뜬 섬이 된다. 정원 앞에는 바라다 보기 좋은 마루가 나 있어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명상과 참선에 잠긴다.
이 정원이 유명하게 된 이유는 15개 돌들의 오묘한 배치에 있는데 어느 방향에서 보든 반드시 1개 이상이 돌은 안 보이도록 배치되었다. 친절한 설명서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은 의심 어린 눈초리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눈을 가늘게 뜨고 헤아려 보지만 한 번도 빗나감이 없다.

이 작은 정원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수렁 같다. 보잘것 없어 보이던 첫인상은 이내 사라지고 한 없이 들여다보게 되는 이 정원은 머리 속에서 점점 커져간다. 작은 돌이 섬이 되고, 모래가 바다가 되다가 결국엔 우주까지 되고 만다.

은각사에 있는 가레산스이는 세 개의 모래 산이 있는 정원이다. 굵은 흰 모래는 승려들에 의해 언제나 정갈하게 물결치고 있고 세 개의 모래 산은 어디서 보아도 하는 가려진다.

가레산스이 정원이 있는 절들은 물과 대나무, 이끼, 정원수들로 이루어진 정통적인 일본 풍의 정원을 동시에 갖고 있다. 료안지에서는 모래정원을 바라보던 마루를 다다미 방을 끼고 돌아가면 된다. 잠깐이지만 마른 정원이 눈에 익어서인가 짙푸른 그늘이 느껴지는 정원이 오히려 낯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장식적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나무로 이어 수로를 만들고 작은 연못을 지나 집 밖으로 나가는 물, 봄이면 벚꽃이 피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되고, 가을이면 단풍이 지는 정원이 겨울엔 눈을 맞아 눈꽃을 피운다. 가레산스이에서 우주를 상상했다면 초록의 정원에서는 지구의 1년 사계를 그대로 볼 수 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ZEN 스타일 즐기기
일본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교토를 몸소 체험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중의 하나는 전통여관에 투숙하는 것이리라. 일본에서 전통여관은 웬만한 호텔보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전통적이면서 호사스러운 아주 비싼 숙소를 말한다. 웬만한 전통여관은 그 존재 자체가 자존심이며 긍지다. 이런 여관들의 객실은 달랑 하나 방만 주어지지 않으며 온천, 거실, 화장실, 욕실, 정원 등 하나의 온전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이다. 아침 저녁으로 밥을 나르고, 다다미에 이불을 펴고 개주는 직원이 있는.

그러나 그런 비싼 여관들이 아니더라도 민박의 개념으로 저렴하면서 대신 서비스 부분을 축소시킨 합리적인 숙소들이 얼마든지 있다. 작은 등을 내 건 민박집 같은 가정집에서도 충분히 일본 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 방은 좀 작더라도 정원엔 은은한 등이 켜져 있고, 한 옆으로는 작은 온천을 대나무가 둘러서 있는 운치 있는 여관을 교토에서는 자주 만날 수 있다.
여행은 직접 그 나라를 느껴보는 것, 그런 면에서 일본에서, 특히 교토에서의 민박은 추천할 만하다. 고층빌딩의 호텔 객실에 있는 침대는 어디서나 다 볼 수 있지 않은가.

또 한가지 방법은 이들의 찻집을 이용하는 것. 두터운 색의 전통찻집은 깊은 세월의 맛이 느껴지지만 최근 들어 이 ZEN 스타일을 이용한 식당들이 많아졌다. 물론 현대적인 감각으로 지었지만 곳곳에 작은 작은 정원을 만들어 놓는 섬세함을 발휘한다. 대나무와 이끼를 이용한 구석정원,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모래정원들은 다분히 선종 스타일의 분위기를 연출해 우연히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유명한 관광지를 돌면서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그 곳의 분위기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다. 교토에 가면, 조용히 참선과 명상의 시간에 빠져 보도록 하자. 무념무상의 세계로, 마음의 평화를 찾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다.
교토 여행하기
교토를 여행하려면 최소한 2일 이상의 시간을 안배해야 한다. 그만큼 볼 유적도 많고 시간을 넉넉히 가지면서 여유롭게 봐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적지야 빨리빨리 돌면 되겠지만 교토는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느긋한 마음이 생기는 곳이다. 사색에 잠기기 좋은 오솔길이나 명상에 빠지게 만드는 정원, 두터운 이끼가 낀 시원한 뒷마당, 잘못 들어선 작은 골목길의 주택가, 우연히 들른 동네 절… 특별히 명승지가 아니더라도 의외의 장소에서 머물게 되는 일이 많다. 게다가 교외로 나가면 주변에 즐길만한 자연 유원지도 있어 시간은 넉넉할수록 좋다.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관광지로는 금박 누각으로 유명한 금각사, 언덕에 세워진 절 청수사, 이조성, 헤이안 진구 등이다. 교토의 옛 모습을 간직한 기온 거리를 걸으며 뒷목까지 하얗게 분칠을 하고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를 보는 행운도 기대해 본다.


출처 :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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