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1948)이전 영국에 대한 공업용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원 겸 영국상품의 시장으로서 전형적인 식민지적 경제구조로 출발하였다. 19세기부터 홍차와 황마(쥬트)의 플랜테이션 경작이 확대됨으로써 근대공업이 시작하였으나,서파키스탄의 차별정책으로 세계최빈곤지역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이러한 차별정책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독립하게된 주요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전형적인 저개발농업국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계 1위의 인구 조밀국으로서 전체인구의 약 67%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농업부문이 국내총생산중 35%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부문이 낙후하고 부존자원이 빈약하다.

또한 소수민족 구성비가 낮아 비교적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 소수민족으로는 치타공 구릉지대(Chittagong Hill Tracts: CHT)에 독특한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12개의 소수부족들이 거주하며 이들의 총인구는 70만정도 (방글라데시내 소수민족은 약120만)로 추산되고 있다. 문맹율(1991년)은 전체인구의 67.6%에 이르며,노동력의 약 5%정도만이 고졸이상 과정을 이수할 정도이나 방글라데시 정부의 노력으로 90년초부터 초등학교 취학율이 높아져 82%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교육수준은 매우 낮다고 보면 된다.

방글라데시의 대외정책은 비동맹.중립외교노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는 자주독립 및 주권의 확보.유지,국내정치.사회발전을 위한 다양한 우호협력관계 증진,평화.자주.진보를 위한 국제협력증진 등을 외교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헌법 제25조는 주권평등,내정불간섭,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유엔헌장 및 국제법 준수(민족자결주의,반식민,반제국,반인종주의),회교적 결속에 기초한 회교국가간 형제관계의 유지 및 강화를 외교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회교국의 일원으로서 회교국가간의 협력과 발전이 주요외교시책의 하나이다. 중동지역에 대한 방글라데시의 노동력 수출은 국가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원조국의 하나인 사우디와도 74.11월 국교수립 이후 양국수뇌의 빈번한 상호교환방문 등을 통해 경제원조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나라 전체적으로 볼 때는 높은 인구밀도(세계 1위),여전히 높은 인구증가율(1.78%),높은 문맹율(67.6%),낮은 국민자본 축적 및 기술수준의 낙후,합리적 경제정책을 추진할 정치사회적 기반 취약,농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에도 불구하고 농업생산의 불안정(기후조건에 좌우),부존자원 빈약 등이 경제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잦은 홍수로 인한 농업생산 부진과 공업생산의 완만한 증가로 경제성장이 저해되고 있으며,대부분의 비농업 원료,기계,장비 등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천연가스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도 에너지 수입이 과중한 실정이다. 또한 경제발전의 투자재원을 주로 외자에 의존하고 있으나 최근 무상원조의 감소로 상환 부담이 높아지고 있으며,잦은 정치적 파업은 수출산업등 제조업 분야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구매력을 보유한 인구비율이 낮다. 또한 복잡한 법이 개인의 제조업 등 투자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로 해외원조(연간 약 $ 20억 규모)와 해외취업노동자들의 송금에 의해 만성적인 무역수지적자를 일부 보완하고 재정의 약 60%를 동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주요 개발사업은 국외자본을 주요재원으로 하여 추진되며,원조국의 영향력이 크다. 시장규모는 매년 높은 인구증가로 확대되고 있지만 낮은 국민소득으로 유효수요 및 구매력은 미미하다. 다카,치타공,쿨라,라샤히 등이 주요상업도시이나 다카 및 치타공에 대부분의 상업활동이 집중되어 있다. 국가기업체를 제외하고는 대규모 도소매상이 없으며 대부분 가족경영 형태로 소규모 영업을 하고 있다. 회교국가로서 종교의식이 소비패턴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내구소비재 시장형성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어려운 형편이다.

관광지는 회교 및 동국의 경제현황 등의 이유로 거의 개발이 안된 상태이다. 주요관광지는 Cox's Bazar 해안(치타공 남부지역 위치,세계최장 해안선),Kaptal Lake(Rangamti 지역소재),Chittagong Hill Tracts 족촌,서남부 Khulna 자연림지역 및 북남부 Sylhet 차농원 등이 있다.


종교 : 회교도가 전체 인구의 약 87%를 차지하는 회교국가로 코란에 의한 회교율법이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중동지역 정통 회교국에 비하여 다소 완화된 현상을 보인다.
회교도들은 하루에 5-6번씩 기도생활을 하고 있으며 휴일인 금요일에는 사원에서 집단 기도를 한다. 1년에 두차례 이드(EAD)축제 기간은 정부에서 공식 공휴일로 지정하여 국가 전체적으로 명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가족과 친인척끼리 한자리에 모여 율법에 따른 각종 의식을 행한다.
이 때는 귀성객들로 버스나 기차 터미널이 매우 붐비고 모든 관공서 및 상점들도 문을 닫는,우리나라로 치면 구정이나 추석 명절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회교도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다음과 같은 다섯까지 율법을 지켜야 하는데,즉 알라 등 회교에서 정하는 대상과 율법을 철저히 믿어야 하며(IMAN),매일 5차례의 기도를 해야하고(PRAYER),자기소유의 최소 2.5%를 거지에게 나누어주어야 하고(JAKAT),라마단 기간중에는 금식을 해야 하며(FASTING),능력이 있는 사람은 일생동안 한 번 이상 회교성지인 메카를 방문해야(HAJJ) 한다는 것이 그 것이다. 모든 능력자(신체적 정신적 금전적)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하고,죽은자는 반드시 매장해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고 있다.


주요민족 : 방글라데시는 여타 인근 국가와는 달리 국민의 대부분이 단일민족인 뱅갈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뱅갈족 자체는 오랜 역사과정에서 형성된 Proto-Aust-raloid(호주 원주민계),드라비다족,아리안족,몽고족 등 여러 종족간의 혼혈족이다. 이밖에 방글라데시 국경지역에는 지역간의 고립에 의해 비교적 고유의 혈통을 보존해 오고 있는 hakma,Mogh,Mru,Bom,Mizo,Pankhu족 등 소수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소수 부족들은 치타공 Hill Track 에 거주하고 있으며 불교,힌두교,기독교 및 무속신앙을 믿으며 매우 온순하다. 또한 고유의 풍습을 지키고 사냥이나 농사를 짓고 있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일을 많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이들 소수 종족들과 방글라데시인 사이의 인종간 마찰은 없다.


주요언어 :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고 언어는 대부분의 국민(전체의 98%가량)이 인도. 아리안어족에 속하는 뱅갈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방언이 많음. 따라서 뱅갈어(BENGAL)를 공용어로 하고 있으며 지식인들이나 비즈니스 종사자는 대부분 영어를 상용어로 사용한다


기후
방글라데시의 기후는 아열대 몬순기후(Sub-tropical monsoon)로 고온다습하며,겨울(11월-2월),여름(3월-6월),우기(7월-10월)로 구분된다. 연평균 강우량은 보통 1,902-4,842mm 정도를 보이며,도시별로 보면,다카 2,186mm,실렛 4,842mm 그리고 치타공이 약 3,310mm 정도이다. 그러나 7월에서 9월사이에 연강우량의 약 75%가 집중되며,이 시기에 홍수가 자주 발생한다. 연평균기온은 겨울이 약 20℃(11-29℃)정도이며,여름은 36.7℃(21-38℃)이다.

습도는 일년 내내 80-90%로 매우 습하며,몬순계절의 연례행사인 홍수와 싸이클론(태풍)으로 매년 곡물 및 인명피해가 크다.


지리
국가 전체 면적은 144,000 KM2로 남한의 약 1.5배이며,한반도 전체의 2/3정도이다. 북위 20도 34분과 26도 38분,동경 88도 10분과 92도 41분 사이에 위치하며,나라의 3면이 인도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동남부 일부가 미얀마와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남부는 벵갈만에 속해 있다. 충적평야지대로 국토의 90% 이상이 평지로,매년 많은 비가 내려 홍수의 피해가 극심하다. 국토의 고도는 1마일당 5인치 정도에 불과하여 바다로부터 약 300Km이상의 내륙의 고도가 3m에 불과한 점도 특이한 사항이다.

방글라데시는 5개의 성(Division) 즉,Dhaka,Chittagong,Rajshahi,Khulna 그리고 Barisal로 나누어져 있다. 성 밑에는 21개의 현(Region,또는 Greater District),64개의 Zila(또는 Sub-division),489개의 군(Thana),4,451개의 촌(Union) 과 59,990개의 촌락(Village 또는 Mauzas)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한 현지어
현지어 : Hello /앗살라무 알라이꿈/ 무슬림
의 미 : 인사. 안녕하세요?
현지어 : Excuse me /Forgive me /맙 꼬룬/
의 미 : 용서하세요.
현지어 : How are you? /께몬 아첸?/
의 미 : 어떻게 지내세요?
현지어 : Do you smoke? /씨가렛 칸?/
의 미 : 담배 피우세요?
현지어 : My country is Korea. /아마르 데시 꼬리아/
의 미 : 한국에서요.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선사시대부터 뱅갈지역(인도의 West Bengal주 포함)에는 선주민인 드라비다족이 살고 있었으나 BC 6세기경 부터는 인도등지로부터 아리안족이 침입하여 곳곳에 정착하기 시작함. 또한 가까운 티베트,미얀마 등지로 부터는 몽고족,터어키족등이 이주해 와서 종족간의 혼혈이 이루어졌으며 뱅갈인이 형성되었다. BC 5세기 중엽부터 뱅갈지역(브라마트라강 서쪽지방)은 마가다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 무렵부터 불교가 전파되었음. 이어 마우리아왕조와 쿠샨왕조로 이어지면서 불교가 이지역에서 교세를 크게 떨쳐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다.

그러나 AD 4세기 굽타왕조가 인도를 재통일하면서 부라만교를 국교로 정하자 불교는 일시 쇠퇴하였으나 AD 8세기경 팔라왕조가 성립되면서 불교는 비로소 전뱅갈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1204년 회교도의 침입으로 팔라왕조가 멸망하고 터키계의 고리왕조가 성립되면서 터어키계 회교도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음. 그러나 1576년 무갈왕조의 아르바르대제가 뱅갈지역을 정복하고 이 무갈왕조는 영국식민통치와 대체될때까지 계속된다. 아크바르대제는 행정기구를 중앙집권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토지의 사유를 금지하고 왕이 토지를 소유하면서 궁정회교 귀족에게 하사하였으며 귀족들은 토지를 지방호족(힌두교도)에게 세습적으로 관리하게 하였음. 이에 따라 궁정귀족을 중심으로 문화가 번성하였고 수공업과 상업업이 발달하였다. 상공업의 발달로 도시직인의 지위가 향상되고 비회교도에 대한 인두세 부과등 차별정책이 시행되자 카스트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교로의 개종이 시작되어 오늘날 회교국의 계기가 되었다.

1600년 영국의 인도경영이 시작된 이래 1757년 프랑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함에따라 영국은 뱅갈지역을포함한 인도전역에 대한 배타적인 지배권을 갖게 되었으며,1773년부터 총독에 의한 영국의 직접통치는 회교도에 의한 등용의 차별(힌두교도 우대)정책과 수탈정책으로 뱅갈 회교도들은 영국인과 힌두교도의 이중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고 농촌은 황폐화 되었다.

1815년 이래 영국으로부터 기계와 제품이 수입됨에 따라 번성하던 면공업도 완전히 파멸하였으며 이를 대체할 수출품 생산을 위해 쥬트와 차재배가 시작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세기 초엽부터 반 힌두교 성격이 강한 회교부흥운동이 일기 시작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 회교 엘리트들의 방영운동이 뱅갈지역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2차대전의 종료와 함께 종교적인 공통성 때문에 뱅갈지역은 파키스탄의 1개주인 동파키스탄으로 1947년 8월 24일 독립하였다. 종족,언어 및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동,서지역이 한나라로 독립되고 서파키스탄 정부의 차별정책으로 1952년 동파키스탄의 저항운동은 뱅갈어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음. 중앙정부가 주정부를 해산하고 대통령의 직접통치하에 두어 아유부 칸 장군의 군정에 의한 통치와 1962년 퇴역한 후의 민정통치에 대해 뱅갈인들의 거족적인 데모로 1969년 10월 야야 칸 장군에게 정권이 이양 되었다. 1970년 총선에서 동파키스탄 분리를 주창헤 왔던 아와미 연맹당의 압승으로 중앙정부의 국회개회 무기한 연기에 대항하여 무지브르 라만 당수가 전면파업과 함께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동,서의 대립은 내전을 거듭하게 되었으며,동파키스탄 해방운동을 중앙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였으나 인도의 참전으로 실패하고,1971년 12월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하게 되었다.

독립후 무지브르 라만당수가 귀국하여 1972년 1월 11일 잠정헌법을 선포하였음. 라만은 A.S.쵸드리를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자기는 수상으로서 국방,내무,공보상을 겸하고 사회주의 경제방식과 비동맹 중립노선을 견지할 것을 선언했다. 1972년 12월에는 헌법제정에 이어 1973년 3월에 실시된 최초의 총선에서 무지므르 라만이 이끄는 아와미당이 압승하여 라만체제가 더욱 공고화 되었으나,1974년 대홍수와 석유파동 등에 의한 경제의 혼란과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겹쳐,야당에 의해 주도된 반정부 활동으로 국내치안이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1974년 12월말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975년 1월 대통령중심제로 하는 헌법을 개정하였다. 1975년 8월 계엄령의 선포로 정당활동의 금지와 일당통치를 기도하던 중 무지므르 라만 대통령이 청년장교들에 의해 피살됨을 계기로 쿠테타가 발생하여 동년 12월 지아울 라만 장군이 정권을 장악하고 1977년 7월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1981년 5월 31일 쿠데타가 발생하였으며,지아울 라만 대통령이 치타공에서 육군장군이었던 General Manzoor에게 암살당했다.

1982년 3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ERSHAD중장이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계엄령하 통치를 계속하였으며,1986년 5월 7일 민정이양 첫단계로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여 Ershad가 만든 정당인 JATIYA PARTY가 압승하였다. 1986년 10월 15일 민정이양을 위한 대통령 선거에서 ERSHAD가 대통령에 당선,1986년 11월 10일 계엄령 철폐하였다. 1987년 11월 11일-26일(17일간) 야당측은 ERSHAD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대정부 강경투쟁(Dhaka Siege Program)을 벌이자 정부는 1987년 11월 27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987년 12월 6일 국회를 해산했다. 1988.3.3일 정부는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여 여당인 ATITY PARTY가 83%의석(300석중 250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동년 4. 25일 국회개원과 더불어 비상사태를 해제하였으며 4.28일 개각을 단행하였다. 1989년 7월 대통령임기 5년으로 1회 연임가능,부통령은 국민투표로 직접 선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헌법을 개정하였으나 야당연합 주도 정권 퇴진운동으로 1990.12.6일 어샤트 대통령의 하야 및 JATITY PARTY정권이 붕괴하였다. 1990.12.7일 전임 대법원장 샤하부인이 야당연합의 추천하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총선에 의한 신의회 구성 및 민선정부에 권력이양을 약속했다. 1991.2.27일 총선결과 방글라데시 국민당(BNP : Bangladesh Nationalist Party)이 승리하여 기타 군소정당과 연정으로 Ziaur Rahman 전 대통령의 미망인인 Khaleda Zia여사가 수상에 취임하였으며 동년 9월 15일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하였다. 이후 5년간 방글라데시를 통치하던 Khaleda Zia 총리는 지난 6월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 총선전 총리 사임을 주장하는 야당의 집여한 투쟁에 굴복 "96.3.31일 사임하였으며 이어 전 내각이 총 사퇴함으로써 BNP정권이 막을 내렸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3.31일 전직 대법원 판사였던 Muhammad Habibur Rahman을 과도정부 수반에 임명하고 동인은 각정당의 추천을 받아 10명의 과도정부 각료를 임명하여 과도내각을 구성하였다. 1996. 6.12일 과도중립내각하에 제7대 총선이 실시되어 제1야당이었던 Awami League가 300석의 총 의석중 146석을 차지하여 제1당으로 등장하였으며,이에 따라 Awami League는 32석을 얻은 제2야당인 Jatiya Party와 연합으로 신정부를 구성하고 "96.6.23일 Awami League 당수인 Sheikh Hasina가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


유용한전화번호
<주 방글라데시 한국대사관>
:Tel. 8812088-9 Fax 9882613
:Tel. 8824218,8813153 Fax 8823068
<한인회관 및 한인학교>:Tel. 602721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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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aton:Tel. 863391
Purbani:Tel. 9563624
-치타공지역
Agrabad:Tel. 500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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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울 게스트:Tel. 601253,602324 Fax 8823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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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든 게스트:Tel. 8828499,605782 Fax 8828400
-새 한 게스트:Tel. 9886208,855551 Fax 9886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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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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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공지역:Tel. 220691,222319
<병원>
다카지역-내과:
박상원 의사(KOICA 협력의):Tel. 8814036
Dr. Islam:Tel. 9333420,602323
Dr. Wahab:Tel. 881454,605125
외과,정형외과:
정현근 의사(KOICA 협력의):Tel. 9114075
Dr. Rahman:Tel. 600317,605120
치과:
Dr. Jhonson:Tel. 604415,882849
산부인과:
Dr. Ershad:Tel. 509560,327943
치타공지역-
Genedral Hospital:Tel. 220536
Medical College:Tel. 206891
전화안내:17,18



전압 및 주파수
220∼240볼트 50Hz

치안
민족자체는 온순하나,경제불황으로 인해 거리의 아이들이 많아지고 그에 따른 소매치기가 급증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한국인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거주지역의 치안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외국인에 임대되는 집들은 창문마다 철제 방범망이 설치되어 있으며,야간 절도에 대비하기 위해 경비원을 고용하거나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경비를 세우고 있기도 하다. 일부 가정에서는 도난을 당한 경우도 있으나 그리 잦은 편은 아니다. 빈민층 불량조직의 피해를 피하기 위해서 가급적 야간 산책은 삼가하는 것이 좋고,교통질서가 잡히지 않는 시내나 시외지역을 불문하고,자가용차량의 직접 운행을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삼륜 자전거들의 무질서가 심하고 현지인이 운전하는 차량들의 과속과 중앙선 침범이 다반사이므로 운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외국인에 대체로 호의적인 방글라데시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현지의 상류층 사람들은 하층사람들을 무척 가혹하게 대하지만,인정이 많고,좀 잘못이 있더라도 쉽게 용서하는 한국인들의 가정이나 업체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의 경우 다른 곳에 취직하려 하지 않고 다시 한국인 사회에서 일하려 하는 경향도 있다.


통화
공식 화폐단위는 타카(Taka)이며,1타카는 100파이사(Paisa)이다. 지폐는 TK 1,2,3,4,5,10,20,100,500을 사용하며,동전은 P5,10,25,50,100가 있다.

한국으로 전화
우리나라로의 국제전화방법은 자동전화의 경우,0082(한국코드) + 2 (서울 지역번호) + 전화번호의 순으로 누르면 되며,교환을 이용할 경우,152번이나 162번으로 신청하면 된다.


현지로 전화
우리나라에서 방글라데시로 전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전화사업자 번호 즉,001(또는 002등)을 누른후 8802(국가번호)-지역번호-전화번호의 순으로 하면 된다.


주의사항
외국인 금기사항
회교국으로서 여성이 매우 보수적이므로 유심히 바라보거나 말을 거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타인과 발을 부딪히는 것을 극도로 꺼림도 유의할 사항이다. 대부분이 수저를 사용치 않고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기 때문에 현지인과 식사시 가급적 왼손은 사용치 않는 것이 좋다.

상대에게 약점을 보이는 것은 치명적이 될 수 있으므로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줄 필요가 없다. 현지에서의 한국인끼리의 과당경쟁으로 우리 스스로의 손해를 자초하는 사례가 많고 또한 현지인들도 이러한 한국인의 특성을 잘 알고 있어 우리 스스로 자제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상품구입시 유의사항
바가지가 많고 물건중 파손된게 더러 나오는경우가 있으니 꼼꼼히 살펴야 한다

복장 및 의복 관련사항
항상 우기이니 이점을 유의해야 한다.


비자
▣ 국내 비자발급처
기 관 명 : 주한방글라데시대사관
주 소 : 서울시 용산구 동빙고동 1-92, 1-67
전화번호 : 02-796-4056/7, 02-795-6535
팩스번호 : 02-790-5313
근무시간 : 09:00-13:00 & 13:00-17:00, 토요일 휴무

▣ 비자신청시 유의사항
비자는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데, 수수료는 52,000원이며, 유효기간은 단수 및 더블 비자는 6개월, 복수비자는 6-12개월이다. 비자발급시간은 단수비자인 경우 24시간이며, 나머지는 48시간 걸린다. 우편신청의 경우는 보통 7일에서 10일정도 소요된다. 방글라데시 입국시 유의사항으로는 이스라엘을 경유하여 입국하거나 이스라엘 입국경험이 있으면 입국이 거절된다.
비자면제조건은 첫째,안티구아바부다, 바하마, 부탄, 도미니카, 피지, 감비아, 그레나다, 기네비소, 자메이카, 온두라스, 레소토>레소토, 말라위, 몰비드, 파푸아뉴기니아,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솔로몬제도, 우루과이 국민일 경우, 90일간 방글라데시 입국시 비자가 면제되며, 방글라데시를 경유할 때 공항을 떠나지 않고, 첫비행기로 출발시에 비자가 면제된다. 또한 이민국직원에 의해 체류허가를 받고 리턴 티켓을 가지고 있는 관광객이나 비즈니스맨은 비자가 면제된다.

▣ 비자신청시 구비서류
비자신청구비서류로는 관광비자의 경우 신청서 2장, 3개월 이상 남은 여권과 여권용 사진 2장이 그리고 상용비자의 경우는 신청서 2장, 3개월 이상 남은 여권, 여권용 사진 2장과 초청장이 필요하다.
양국간 사증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으나, 일반여권 소지자의 경우 현지 관행은 공항에서 입국비자(45일 이하)를 발급해준다.


방글라데시의 기후는 아열대 몬순기후(Sub-tropical monsoon)로 고온다습하며,겨울(11월-2월),여름(3월-6월),우기(7월-10월)로 구분된다. 연평균 강우량은 보통 1,902-4,842mm 정도를 보이며,도시별로 보면,다카 2,186mm,실렛 4,842mm 그리고 치타공이 약 3,310mm 정도이다. 그러나 7월에서 9월사이에 연강우량의 약 75%가 집중되며,이 시기에 홍수가 자주 발생한다. 연평균기온은 겨울이 약 20℃(11-29℃)정도이며,여름은 36.7℃(21-38℃)이다.

습도는 일년 내내 80-90%로 매우 습하며,몬순계절의 연례행사인 홍수와 싸이클론(태풍)으로 매년 곡물 및 인명피해가 크다.




▶ 다카 [Dakar]

방글라데시의 수도로 방그라데시 중남부 달레슈와리 강의 지류인 부리강가 강 바로 북쪽에 있다. '다카'라는 이름은,한때 이 지역에 많이 자라던 다크나무에서 따왔거나 다케슈와리('숨은 여신')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 도시 서쪽에 다케슈와리 사원이 있다. 다카의 역사는 1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무굴 제국의 벵골 주의 주도(1608~39,1660~1704)가 된 17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중요한 도시로 떠올랐다. 해상무역의 중심지로서 영국,프랑스,네덜란드의 무역상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다카시에는 이슬람 시대에 지은 유서깊은 건축물로 많이 있다. 벵골 주 총독의 아내였던 비비 파리의 묘지,바라카트라,랄바그 요새,초타카트라,후사이나 달란 등이 있다. 그 밖에 17세기 건물로 다케슈와라 힌두교 사원과 포르투갈 사람이 지은 테지가온 교회가 있다. 바이트울무카람을 비롯하여 700개가 넘는 이슬람 사원들의 건축 시기는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미얀마와 타이의 종교적 건축물도 있다.

벵골 주의 주도가 무르시다바드로 옮겨지고 모슬린 산업이 기울어지자,다카도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며 1765년에는 영국이 지배하게 되었다. 1864년 자치시가 되었지만 동벵골아삼 주의 주도로 정해질 때 까지 쇠퇴를 거듭했다. 20세기초에는 상업중심지이자 교육도시였으며 동벵골 주의 주도였다가 파키스탄이 독립하자 동파키스탄 주의 주도가 되었다. 1971년 독립전쟁 때 심한 피해를 입었지만,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해나오면서 방글라데시의 수도가 되었다.

현재의 다카는 남쪽으로 16Km 떨어져 있는 외항 나라 양간지와 더불어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산업 중심지이다. 잠다니(고급 모슬린),자수제품,견직물,보석이 전통적인 생산품이다. 교육기관으로는 다카대학교와 이대학교에 속하는 많은 공립대학이 있으며,공과대학교와 농과대학교,원자핵연구소,도서관 등이 있다. 다카의 주변지역은 메그나 강과 파드마 강,자무나 강으로 둘러싸인 평탄한 평야로 되어 있다. 이 평야에는 수많은 시내와 강이 거미줄처럼 흐르는데,주요 강으로는 달레슈와리 강,부리강가 강,라키아 강이 있다. 쌀,황마,사탕수수,유료종자 등을 주로 재배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목장이 있으며 황마 가공고 밧줄,노끈,바구니,면직물,소형선박 등의 제조업이 발달해 있다. 일찍이 벵골 지방을 다스리던 팔라 왕조의 수도였던 고대도시 비크람푸르도 이곳에 있다.


교육
의무교육제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취학률이 낮고,문맹률도 매우 높은 편이다. 다카에는 공립 대학교인 다카 대학교(university of dhaka)가 있고 2년제 대학도 있다. 사립대학교도 있지만 등록금이 매우 비싸다.


산업
한 나라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방글라데시가 세계 3대 빈국인 만큼 도시의 산업 발달도 미약한 편이다. 쌀,밀 등의 작물 농업가 주를 이루며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 타산업의 비중은 그리크지 않다.


강우량의 계절적 변화가 무척 심한 이 곳은 비교적 온난하고 습도가 높은 전형적인 아열대 몬순기후이다. 3월에서 6월은 스콜이 많이 나타나며,강우량이 가장 많고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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