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 병마용 아방궁 화산 5/6일
산시성의 성도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도중 하나이다. 3000년의 도시 역사 중 절반 이상을 제국의 수도로 기능했던 만큼 중국의 사상과 문화는 서안으로부터 갈라져 다른곳으로 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를 횡단하는 길 실크로드의 중심축이기도 하며 한무지,진시황,양귀비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영웅호걸들의 로망이 살아 숨쉬는 곳, 중국역사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 서안을 여행해보자.
DAY 1. 늦은 밤 비행기를 타고 역사여행을 떠나는 꿈을 꾼 듯 서안에 도착하다.  
 


서안

인천출발-서안도착

 
  DAY 2. 옛 장안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서안 역사여행 스타트~  
 


명대성벽

중국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의 성이 이곳 서안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이라도 마치 수많은 군사들이 성 안과 밖에서 사투를 벌일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서안 성벽은 중국에서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몇 안되는 성벽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서안 성벽은 명나라 시조인 홍무제때 당나라의 장안성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600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총 길이는 13km에 달하며, 높이는 12m, 폭은 위가 12~14m, 아래가 15~18m의 규모로 큰 사각형의 형태로 도시를 감싸고 있다. 성문도 이중문으로 되어 있다. 철옹성이란 바로 이런 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벽위는 차가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성 안과 밖의 전망이 일품이다. 이렇게 큰 성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진시황릉

진시황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하다. 진시황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불로장생이다. 불로장생하고 싶었던 진시황제는 이렇게 큰 무덤을 만들고 이곳에서 불로장생의 염원을 이어가고 싶었나보다. 황릉으로 발굴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곳을 그저 나지막한 산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곳이 진시황제의 능으로 밝혀진 후 세계는 깜짝 놀랐으며, 1987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진시황릉 주위로는 온통 석류나무이다. 관광지로 꾸며놓지 않고, 또 이곳이 진시황릉이라는 것을 모르고 왔다면 도저히 황릉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저 하나의 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이 들지만, 황제의 능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대단한 것이 된듯한 으쓱한 느낌도 든다.


병마용박물관

병마용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1990년작, 중국영화 <진용>이다. 감독으로 우리에게도 너무 유명한 장예모감독이 직접 주연한 영화이다. 이곳에서 장예모 감독이 주연한 ‘몽천방’은 병마용이 되었지만,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주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개인적으로 참 감명깊게 본 영화중 하나이다. 1974년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된 후로 현재까지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1호갱부터 3호갱까지 있지만, 가장 볼만한건 1호갱이다. 입장료가 다소 비싸긴 하지만, 그 거대한 규모와 섬세한 조각상들이 수도 없이 펼쳐져 있는 장관은 꼭 한번은 볼만하다. 이 모든 것이 진시황제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청지

중국의 4대 미녀들중 양귀비로 유명한 곳, 바로 화청지이다. 당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로 유명한 이곳은 두 사람이 겨울별장으로 이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규모도 크고,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하게 한다. 과거 두 사람의 로맨스가 펼쳐졌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또한 두 사람이 즐겼다는 여러 가지 온천탕도 만들어져 있다. 화청지를 두 사람의 로맨스 장소로만 알면 큰 오산이다. 이곳은 또 하나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1936년 서안사변이 일어났을 때, 장개석이 이곳 화청지내의 오간청에 감금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로맨스과 현대의 전쟁역사가 함께 남아 있는 곳, 바로 화청지이다.


교자연특식

교자란 쉽게 말하면 소를 넣은 만두를 말하는데, 서안은 교자연이 아주 유명하다. 서안은 일조량이 풍부하지 않아 쌀농사보다는 밀농사가 적합하다. 따라서 밀가루로 만든 교자라든가 면 종류의 음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 모양과 색깔이 다양하고 화려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준다. 중국인들은 춘절(설날)에 가족끼리 교자를 빚고 쪄 먹으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이 있다. 또한 돈을 좋아하는 중국인에게 있어 반달형의 교자는 돈의 모습과 비슷하다하여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실제로 설날에 몇 개의 동전을 교자에 넣어 만들고, 그 동전을 깨무는 사람에게 돈복이 온다고 믿는다. 다양한 교자의 종류가 180 여종 이상이라고 하니 역시 중국은 음식의 천국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DAY 3. 서안 그 유구한 역사속에 빠져들다.  
 


섬서성역사박물관

북경의 고궁박물관, 남경 박물관, 상해 박물관과 함께 중국 4대 박물관으로 불리우고 있다. 박물관이라는 것이 지루하고 딱딱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무조건 그렇게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나라에서 본듯한 유물도 있지만,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 서안 섬서성 역사 박물관은 중국 내에서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자금성 다음으로 규모가 큰 박물관으로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고전적인 모습과 현대적인 모습이 잘 어우러져 있는 건축물이다. 중국 선사시대의 유골에서부터 역사순으로 나열되어 있는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방궁

현재의 아방궁은 옛 아방궁 터에 재건해 놓은 것이다. 1990년 영화촬영지로 복원한 것으로, 원래 아방궁의 1/5 사이즈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진시황은 중국 통일 후 9년(서기 212년)에 아방궁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나, 미처 그 공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진시황이 죽고 2대 황제 호혜가 연이어 공사를 계속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크고 작은 전각이 700여개가 있었다고 하며, 동시에 약 1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복속시킨 6국에서 보석을 가져다 두고 3000여명의 궁녀를 두었다고 한다. 항우는 유방등과 협력하여 진나라의 수도 함양(지금의 서안)을 함락시킨 후 아방궁에 불을 질렀는데 100일동안 꺼지지 않고 계속 탔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기도 힘들다. 계단 한 가운데에 진시황 조각상이 서 있는데 크기도 엄청크고, 표정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현재까지도 진시황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정말로 대단한 역사적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가의 고부(고가대원 高家大院)

이 대원은 명청 초기에 건설한 것으로 약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집 주인 고악송이 12살 때 과거시험에서 2등을 해 황제로부터 이 저택을 선물 받았다고 한다. 12살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황제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니 정말 감탄이 절로 난다. 진시황릉, 병마용만큼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명청시대의 저택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섬서가무단쇼

섬서가무쇼는 일종의 뮤지컬이다. 섬서성 가무극장은 중국 서부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역사가 깊고 명성이 자자한 공연 단체이다. 섬서성이 독자적으로 갖고 있는 주나라,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의 역사문화와 풍부한 민간음악, 무용문화는 고도 서안이 세계를 향해 아름다운 문화를 표출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섬서성극장의 무용단은 예술 실력이 발군이며, 엄격한 훈련을 받은 청년 배우들이 화려한 실력을 뽐낸다. 극장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화려한 극장이 시선을 빼앗는다. 화려한 조명과 의상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들의 몸짓에 또 한번 빠져든다. 약 1시간 20여분간 공연이 계속되는 동안 지루한 줄 모르고 재미있게 보았다. 그 가무쇼와 화려함이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섬서가무쇼보다 더 화려한 쇼가 있다고 하니 그것은 바로 ‘당락궁쇼’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대의 문화를 보여주는 공연이다. 당나라 때의 화려한 의상과 음악의 매력에 빠져 볼 수 있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당락궁쇼를 꼭 한번 보고 싶다.

 
  DAY 4. 중국 오악중에서 서악으로 불리우는 화산을 오르다.  
 


화산

화산하면 중국 무협 영화의 ‘화산파’가 생각이 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중국 무협영화 ‘소오강호’의 주인공 ‘영호충’이 바로 ‘화산파’이기 때문이다. 무협지속의 화산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는 마음에 일찍이 설레였다. 화산은 돌로 이루어진 산이다. 중국의 오악 중에서도 가장 험준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절경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최정상은 2,200m정도이고, 6명이서 타는 케이블카를 타고 고도 약 1,600m 지점에 도착하여 등반을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아찔한 절경에 조마조마 했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가 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경치 감상에 빠져서 길을 잘 보고 가지 않으면 위험하니 조심해야겠다. 실제로 길 중간에 <走路不看景,看景不走路(걸으면서 경치를 보지말고, 경치를 보면서 걷지 마시오)> 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경치를 감상할 땐 잠시 서서 여유를 갖고 보는게 좋겠다. 산을 깎아 계단으로 만들어진 길이 있는데, 그 길이 예술이다. 바로 옆에 절벽이 펼쳐져 있는데 어찌도 그리 아슬아슬하게도 잘도 만들어 놓았는지 감탄이 절로 난다. 위로 올라갈 때는 그리 무서운걸 못 느꼈는데, 하산하는 길에 보니 한발 한발 내 딛기가 쉽지 않다. 화산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일출과 서봉(서쪽 봉우리)이다. 남봉이 제일 높긴 하지만, 서봉이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찔한 절경에서 바라봤던 경치는 지금까지도 내 기억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DAY 5. 서안의 마지막날!! 화려한 야경을 뒤로하고 떠나는 아쉬운 발걸음  
 


비림

비석이 숲을 이룬 다는 뜻의 비림. 얼마나 많은 비석이 있길래 그런 말이 나왔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가보니 역시나 수 많은 비석들이 서 있다. 약 3000여개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비석을 가지고 왔는지, 역시 중국은 대단한 나라다. 수많은 한자들이 새겨진 비석을 보고 있노라니, 눈이 어지럽다. 안쪽에는 비석의 탁본을 파는 상점도 있다. 비석이 손상되든지 말든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이곳에서 탁본을 떠서 팔 생각을 하다니, 역시 중국인들의 상술은 놀라울 따름이다. 한자나 서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와볼만 하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중국 최대의 서예작품이 집약 되어 있는 이곳을 방문해 볼 만하다. 비림에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비림'이라고 쓰여진 현판에는 '碑'자에 점 하나가 없다. 현판은 청나라 때 아편을 싣고 온 영국의 배를 태워 아편전쟁(阿片戰爭)을 부른 임칙서(林則徐)가 쓴 것이다. 당시 임칙서는 아편전쟁이 화친으로 돌아서자 전쟁도발자로 몰려 신강위구르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임칙서는 유배지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임칙서는 나머지 점 하나를 쓰겠다고 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병사하여 글자를 끝내 채우지 못했다.>라고 하는 이야기 이다. 아직까지도 비림현판에는 그 때의 아쉬움이 남아 있는 듯하다.


대안탑

대안탑은 자은사 경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자은사는 고종이 자신의 어머니 문덕황후를 위해 세운 절이다. 후에 현장법사에 의해 세워진 대안탑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현장법사는 서유기의 삼장법사의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 경내에 들어서니 우선 아주 조용하고 깔끔하다. 문을 하나 지나 왔을 뿐이데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규모가 그리 큰 사찰은 아니지만, 역사의 무게감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대안탑은 기러기와 관련이 깊다. 대안탑은 총 7층짜리 석탑이고 높이는 64m인데, 탑을 오를 수 있다. 계단은 넓은 편이고 2명이 같이 오르내릴 수 있는 정도의 넓이였다. 탑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분수광장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자은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볼만한 것이 대안탑 분수쇼이다. 하루에 2회, 시내에서 하는 무료 공연 이벤트이다. 매일 12:00와 20:30에 공연한다.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분수들이 움직이는데 그 광경이 아주 멋있다. 그 규모가 엄청 커서 장관이다. 특히 저녁에 시작하는 분수쇼는 화려한 조명과 함께 더욱 볼만하다.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소안탑

서안성 남쪽의 천복사에 위치해 있는 소안탑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여성적인 느낌이다. 대안탑의 웅장한 느낌과 다소 비교가 된다. 소안탑은 원래 높이 45m로 15층에 달하는 웅장한 규모였는데, 1555년 지진으로 인해 2개 층이 파괴되어 현재에는 43m, 13개 층만이 남아있다. 소안탑도 올라갈 수 있다. 대안탑과 달리 어둡고 나무 계단이 좁아서 오르기가 쉽지 않지만, 소안탑 위의 2층이 붕괴되어 꼭대기가 트여 있기 때문에,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고, 마음이 뻥 뚤리는 것 같이 시원하다. 소안탑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1487년 섬서성에 진도 6급 지진이 일어나 기단석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로부터 34년 후 1521년 또 한번의 지진이 일어났다. 그런데 반으로 갈라져 있던 돌이 달라붙어 있었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이를 신이 기적을 일으켰다 하여 ‘신합 神合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실은 중국의 고대 장인들은 건축물을 지을 때 기단에 반구형 돌을 썼다고 한다. 외부의 힘을 받았을 때 돌 안에서 내부응력이 생겨나서 갈라진 돌이 서로붙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신비함과 유구한 역사의 흔적이 함께 묻어나는 소안탑, 참 매력적이다.


대당부용원

당나라때 황후의 놀이터였다는 대당부용원. 황후의 놀이터는 대체 어떤 곳일까하는 궁금증을 갖고 도착하였다. 중국 서북지역에서 제일 큰 규모의 테마공원이라고 하며 2005년에 문을 열었다. 원래의 대당부용원은 모두 완파가 되었는데, 최근 홍콩의 부동산 재벌의 투자로 새롭게 재현을 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체 둘러보는데만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역시 뭐든 크게 만드는 중국이다. 중국 최초로 당전성기의 문화와 당대 시대상 및 생활상을 반영하여 재연하여 놓은 곳으로 우리나라의 민속촌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정원 내의 다리는 굴곡이 있는데 이는 중국의 귀신 강시는 곧바로만 가기 때문에 액을 막기위해 다리를 굴곡있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 비디오로 보았던 강시가 떠올랐다. 다리가 굴곡져 있는것과 그런 관계가 있는줄은 처음 알았다. 신기하고 재미있다. 다리 모양 하나를 통해서도 중국의 문화를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DAY 6일. 비행기를 타고 어두움을 뚫고 인천에서 아침을 맞이하러 돌아가다.  
 


서안출발 / 인천도착

어느덧, 꿈만같은 서안 여행이 끝났다. 마치 역사의 도시로 잠시 여행을 떠나는 꿈을 꾼것만 같다. 유구한 역사와 유물유적은 언제보아도 매력이 넘친다. 유구한 역사의 깊이와, 중국 특유의 큰 규모의 관광지와,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는 서안을 잊지 못할 것이다.

출처 : 자격있는 여행전문가 - 모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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